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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의 후폭풍 속에서의 영성훈련 / 박영돈 교수

영성에 대한 생각들

by 지심 정경호 2006. 5. 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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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영돈(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 이 글은 목회와 신학 2005년 8월호의 발췌 내용입니다)

 

한 동안 우리 사회에 '역풍'이니 '후폭풍'이니 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 탄핵 역풍이 정계를 강

타해서 정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그런가하면 영적 세계에도 심상치 않은 난기류가 감지된다. 한국교회에 성령의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성령의 잔잔한 순풍에 순응하지 않으면 성령의 거센 역풍을 만난다. 성령의 뜻을 따라 살면 '풍성케 하는' 성령의 은혜를 맛보지만, 성령을 거스르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한국교회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많이 실감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많은 교인들이 성령의 폭풍우 속에서 호된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신비로운 바람의 정체와 의도를 알지 못하기에 매우 당혹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풍성하게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디만,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성령의 후폭풍(?)

이 글에서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성령의 후폭풍'이라는 은유를 빌려 설명해 보려한다. 물론 '성령의 후폭풍'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도입한 은유적 표현일 뿐이다. 필자에게는 이 어휘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다. 필자는 군에 있을 때 106미리 무반동총 소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총은 지프 위에 싣고 다니는 기다란 포와 같은 것인데, 발사될 때 대포와는 달리 반동이 없는 대신에 포 뒷편으로 불과 후폭풍을 뿜어낸다. 그러면 그 후폭풍에 맞아 들판의 풀들이 말라 버린다. 필자는 그 광경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여 '성령의 후폭풍'이란 은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포 앞으로는 포탄이 날아가고 뒤로는 후폭풍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방향으로는 풍성케 하는 성령의 힘이 분출되지만, 그 반대 방향 즉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쪽으로는 '시들게 하는' 성령의 후폭풍이 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성경에서 성령은 자주 바람으로 비유되었을 뿐 아니라, 특별히 이사야서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시들게 하는 바람으로 묘사 되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이 실로 풀이로다(사 40 : 6~7)."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기운은 성령의 호흡, 바람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사야는 오월 건기에 접어들면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불어오는 거센 열풍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캘빈은 이 대목을 주해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영적으로 새롭게 하실 때 하나님을 대적해서 높아진 육신의 모든 영광과 아름다움을 시들게 하고 쇠퇴케 한다고 했다. 스펀전은 이 말씀을 본문으로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The Withering of Work of the Spirit)"
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했다. 이 설교에서 스펄전은 오래 대망하던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이스라엘에 임하기 전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을 시들게 하는 성령의 사역이 있었다는 본문의 메시지에 근거하여, 지금도  성령은 우리를 영적으로 풍성케 하시기 전에 육적으로 쇠퇴하게 하신다고 설파했다. 이 설교는 특별히 지금까지 신학적으로도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성령사역의 신비로우면서도 감추어진 측면을 실천적이고 목회적 안목에서 예리하게 통찰했다는 점에서 그 창의성과 탁월성이 돋보인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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