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사랑을 가지고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올리십시오.
그러니까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그분을 바라십시오.
실제로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만
그 무엇도 그대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하나님만이 차지하시게
됩니다.....
그것들을 스쳐가도록 놓아두고
전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무지의 구름-
지향의 가치
생각과 나눔 / 지붕과 쉼
관상의 기도를 하게 되면 일반적인 기도를 할 때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관상이라는 것이 물론 모든 기도속에 이미 우리가 체험하였던 것들이지만, 평소의 기도에서
이러한 세밀한 부분들에 대하여 경험하고 깨닫기는 매우 힘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기도, 즉 통성기도나 강청의 기도들은 그 가치가 매우 중요함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발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바라시는 것들이 해소되고 해결되게 되지요.
그러나 자칫하면, 우리의 기도가 본질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음을 강청기도를 하면서
끊임없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기도가 관상기도가 되어야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주문일 것입니다. 관상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해도 그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행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품으로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무척 분주하고 바쁘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목적론적인 기도를
행할 때가 많이 있지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기도의 목적이 된다면, 우리의 기도는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에 우리의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만 있다면, 그 기도는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중에 발생되는 신비적인 체험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체험속에
영원히 있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체험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위험한 발상이 없습니다.
신비주의는 위험합니다. 그러나 신비는 소중한 것입니다. 신비는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랑의 선물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자처럼 불쌍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선물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선물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선물을 한 존재인 것입니다.
관상의 기도를 행할 때, 처음 찾아오는 유혹들은 이러한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관상의 기도를 행할 때, 원하고 바라기는 어떤 신비적인 체험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기막힌 아이디어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그 무엇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금 장황했습니다. 한 주간도 승리하십시오...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샬롬^^
[스크랩] 명상 2 (0) | 2006.11.02 |
---|---|
[스크랩] 헨리 나우웬 (0) | 2006.10.24 |
[스크랩] 명상 1 (0) | 2006.09.27 |
[스크랩] 하나님 안에서 나의 벗에게 3 (0) | 2006.09.21 |
[스크랩] 하나님 안에서 나의 벗에게 2 (0) | 200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