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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 02

영성에 대한 생각들

by 지심 정경호 2009. 1. 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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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렌코헨의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 / 나를 가둔 것은 바로 나 外 나를 가둔 것은 바로 나 영혼의 여행자들은 옛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그때와 부딪히게 마련이다. 때가 되면 시련으 끌과 망치는 우리의 갑옷을 부순다. 그러한 무장 해제는 눈부시게 멋진 사건이다. 자신이 아닌 것 뒤에 숨어 있으면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비극은 없기 때문이다. 우주는 끊임없이 우리의 본질과 목적을 상기시킨다. 만일 우리가 영혼의 부름에 충실하지 못한 삶을 산다면 내면의 안내자는 참된 길로 돌아올 때까지 결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더 이상 자신의 방어벽 뒤로 도피할 수 없을 때가 오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껏 자기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둬온 것이 바로 자신의 방어벽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에 진력이 났고, 자신과 남들의 가슴 사이에 세워놓은 장벽에 숨막혀 한다. 사랑을 잃어버리면서까지 방어벽 뒤에 숨어 있을 필요도, 그럴 가치도 없다. 평화를 희생하면서까지 두려움의 성곽 속에 들어앉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가슴에 고통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다가 기쁨까지 거부해왔다. 그러나 결국엔 스스로 두려움의 사슬을 끊고 진정한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기존의 외투인 속좁은 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진정한 광대함을 드러낼 만한 새 옷을 입어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존엄성으로 삶을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환상일 뿐 처음 깨어남의 길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내 모든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다. 그 전까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해온 수많은 것이 갑자기 무의미해져 버린다. 이제껏 목숨처럼 알고 살았던 가치관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은 나를 충격과 불안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이전에 자주 어울렸던 친구들과도 더 이상 교류하거나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 지금 하는 일을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과거에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던 사회적인 활동들도 더 이상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전에 세워두었던 대부분의 목표들이 더 이상 내게 적합하지 않아, 관심을 쏟을 만한 가치를 상실해버렸다. 내 삶의 목적 의식도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뭔가 더 충실하고 더 나은 기분을 맛보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삶의 영구적인 일부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난 길을 잃어버린 듯이, 때로는 내 자신이 미친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 닥친 것이다. 그런 밤을 겪고 있다면, 혹은 이미 겪은 적이 있다면 그러한 공허감이 전체적인 여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유익하며 필요한 과정이란 사실에서 위안을 얻도록 하라. 정원을 만들기 위해선 씨를 뿌리기 전에 반드시 땅을 갈아야 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선 그 땅에 있는 낡고 무익한 기존의 구조물을 없애야 한다. 새롭고 좋은 요소가 자신의 인생 속에 들어올 만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삶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외부의 더 커다란 힘들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듯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 모든 사건 속에는 배워야 할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기억할. 모든 것은 배우고, 성장하며, 치유하기 위해 존재한다. 창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시며,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환멸의 순간은 믿음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최고선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명심하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 환상이다. 우주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 창조주의 세계는 전우주에서 유일하게 소멸되지 않는 에너지, 즉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환멸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환멸이 환상의 파괴를 뜻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라. 환멸은 그 누구에게나 없어지고, 배후의 진실이 드러났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은 언제나 치유를 가져오며, 환상만이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자부심을 가져라. 자신이 용기를 내어 환상을 깨뜨리고, 힘과 지혜로 그 빈 자리를 채워줄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울리지 않는 꿈은 버려라 일단 깨어나기 시작했다면 결코 다시 잠들 수 없다. 아, 물론 이따금씩 졸 수는 있다. 하지만 등산가가 일단 산 정상을 보았다면 그 무엇도 그가 정상에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이대로 발길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많이 걸어왔다. 그 동안 숱한 환상과 게으른 소원들을 경험해왔지 않는가? 천박한 꿈들의 싸구려 향수가 오랫동안 우리를 감질나게 하고, 자극하며, 유혹해왔지만 이젠 왠지 그런 향기들도 더 이상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우상보다는 평화를 원하게 된 것이다. 용감하게 자기 자신이 되란 말은 약해빠진 자세를 내던지고 힘차게 살라는, 그래서 습관적으로 반대하며 방어하기보다는 평화를 위해 전진하고, 두려움의 악몽에 빠져 있기보다는 사랑의 리얼리티를 찾으란 뜻이다. 이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꿈을 과감히 버릴 때가 되었다. 갑옷은 자기 확장이 아닌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다. 내 안의 신성은 반드시 햇살 속에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유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땅엔 부인하거나 억누르거나 되돌릴 수 없는 깨어남의 위대한 물결이 밀어닥쳤다. 그 물결과 연대하는 이들은 자신보다 더 거대한 힘으로 채워지고 드높여지겠지만 그것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은 자기 모순에 사로잡히고 말리라. 우리는 사랑과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전자의 진실과 후자의 무익함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평화는 그것을 찾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찾아오며, 힘은 그것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고, 사랑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두 팔을 활짝 편 사람들에게 치유를 선사한다. 바야흐로 깨어날 때가 된 것이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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