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임 영성 이야기 2192 / 우유부단한 레위인과 첩과 왕이 없음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영혼 위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도 이제는 '위드 코로나'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바람에 심방도 멈추고 예배 시간에는 더 긴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이런 현상들이 일상이 되겠지만,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해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하는데, 교회의 사역도 이제는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대면의 로컬 처치'와 '비대면의 사이버 처치'가 함께 공존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제는 이 부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면의 교회'가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실제적인 교회 없이 사이버 처치는 불가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위함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면의 로컬 처치만으로 이 시대를 살아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대비해야 합니다. 어떤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기에, 대면과 비대면의 두 세계를 모두 중요하게 대해야 하고, 사역의 장도 그렇게 확장시켜가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면의 교회가 핵심이요 중심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19장 1-10절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3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4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의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고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그대의 길을 가라 하니라
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하니
7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그의 장인의 간청으로 거기서 다시 유숙하더니
8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사사기 19장은 우리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어떤 레위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첫 이야기부터 종교인들의 타락을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책임져야 할 레위인이 타락한 것입니다. 율법에 행음하는 여인을 부인으로 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레위인이지만,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길지라도 아무도 그를 탓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금 시대적 상황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거류하던 어떤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 첩이 자신의 남편에게 불만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레위인인 자신의 남편이 아내 앞에서 또 다른 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첩은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도 남편의 행음에 대한 맞불 행음을 하면서 분명한 불만을 표출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레위인은 다시 자신의 첩을 데려오기 위해서 하인과 함께 여자의 아버지 집에 가게 되고, 이를 본 여인의 아버지는 고대근동의 사위를 대하는 예에 따라서 삼일 동안 잔치를 베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제발 잘 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틀을 더 유숙시킵니다. 그러다가 다시 떠나려고 하는 레위인 사위에 대해서 장인이 붙들자, 날이 저물어 가기에 이제는 떠나야함을 분명히 하고 늦은 오후에 길을 떠납니다. 매우 우유부단(優柔不斷)한 레위인의 모습을 본문은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부스 맞은 편에 당도하게 됩니다. 본문은 여부스가 곧 예루살렘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가까운 맞은 편에서 이스라엘로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공동체가 말씀에서 벗어나고 자신들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하는 것의 부당성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벗어난 타락의 모습은 결국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파탄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그리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의 법도대로 행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가 복되고 복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1)"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성서에서 왕이 없다는 표현에는 여러가지 의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는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하는 배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측면의 왕이 없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소견대로 행함으로 말씀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긋고 지켜내게 하는 힘을 가진 자가 없다는 탄식의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말씀의 법도인 율법을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을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본 말씀은 율법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게 할 왕의 제도가 필요하다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같이 성직자인 레위 사람 조차도 타락하게 되는 사회적 비극이 발생하게 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메시지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는 기본적인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이 허물어지는 순간 교회 또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 되는 기본적인 법칙은 말씀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의 기본적인 법을 지켜내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 법도를 지켜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영적 싸움에 속한 것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면 하늘의 신령한 복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의 삶에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왕이 없다는 탄식 앞에서 레위인마저 타락해 버린 모습 앞에서 우리 자신이 말씀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말씀의 기본적인 법도를 지켜내는 은혜의 마음이 있게 하옵소서. 그리하여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교회다운 모습이 되게 하셔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는 교회의 온 성도들이 다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