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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이야기 2199 / 사사기의 결말 / 베냐민 지파이 회복과 소견에 옳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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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심 정경호 2022. 5. 19.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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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이야기 2199 / 사사기의 결말 / 베냐민 지파이 회복과 소견에 옳음의 문제
 
샬롬^^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영혼 위에~^^
 
최근에 제게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면서 분명하게 고백하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일을 하려고 결심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됨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계획할지라도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이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러하기에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찾아 몸부림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21장 16-25절 말씀입니다.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베냐민 지파에 아내들을 주었음에도 여전히 부족하였습니다. 베냐민에게 400명의 여인들을 아내 삼을 수 있도록 주었지만 여전히 600명 중 200명이 아내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고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베냐민에게 딸들을 주지 않기로 저주하며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고심하다가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19)"라고 지혜를 짜내게 됩니다. 주석학자들에 의하면 실로에서 이 당시에 열렸던 축제는 아마도 장막절이었을 것이라 설명을 합니다. 이 때에는 저녁에 춤을 추러 나와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내를 얻지 못한 베냐민 남자들이 저녁에 춤을 추러 온 여인들을 자신의 아내로 남치해 갈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200명의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이 아내를 얻게 되었고, 자신들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이스라엘 총회가 그제서야 자신들의 기업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 부분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모습입니다. 자신들의 형제 지파 중 한 지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자신들의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가 해결되자 총회가 해산되었다는 점은 끝까지 형제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려고 하였던 책임성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귀감되는 모습을 보게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문제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마땅히 문제가 완결될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총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사기 마지막 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왕이 없으므로(25)"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중앙집권적인 힘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믿지 않는 추상적인 믿음의 모습이라 보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영원하신 왕으로 섬기는 시기에는 이스라엘이 부흥하게 됩니다. 다윗과 같은 때에는 이스라엘의 힘이 고대근동에서 그 위력을 떨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신들의 참된 왕으로 삼지 않았던 왕들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상당한 고난과 어려움들이 발생되었음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씀에는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왕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참된 왕으로 섬기는 자들의 삶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동하며 인생을 말씀대로 세워갈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 부분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사사라는 판관들을 다시 세워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신 사건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의 역사임을 사사기는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함께 하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께 예배 드리며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사사기의 마지막 장에서 베냐민의 회복과 이스라엘 총회가 끝까지 문제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책임감 있는 모습이 있게 하옵소서. 특별히 소망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였사오니 우리의 삶이 오직 말씀 중심으로, 그리고 말씀에 따라서 행동하는 복된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어느 날
팔라마스 보나벤투라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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